hilarious diary
조커(Joker) - 나로 인한 죽음이 가치있기를 본문
오늘 이야기 나눌 영화는 '조커'다.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이미 많은 분들이 기대했고 환호했던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도 남았을 만큼 연약한 '아서'가 '조커'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잘 풀어준 영화였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영화는 '조커'보다는 조커가 되기 이전의 '아서'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옳고 그름의 차원을 떠나 그냥 조커의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 그저 꿈이었던 청년.
정신질환으로 상담 치료를 받기도, 자신도 모르게 느닷없이 박장대소를 하게 되는 알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는 이 청년이 어느 순간 광적인 살인마로 돌연 변하게 되는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 대부분은 불편을 느낄 것이고, 또한 그 사람이 받았던 상처와 이유를 불문하고 잔혹한 행위들을 보며 이해가 되지 않았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주인공이 왜 그렇게 하였을까?"라는 질문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아서'가 '조커'로 변모하게 된 과정을 내 나름의 인상 깊었던 부분을 중점으로 이야기해 보겠다.
※스포주의
"정신 질환의 나쁜 점은, 남들에게 아닌 척을 해야 한다는 것이야"
극 중에서 반복 등장하는 상담 치료사는 정해진 횟수와 시간과 질문을 채우기 위해 '아서'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서'의 질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고, 마치 사회가 약속하여 정한 듯한 일반적이고 평범한 답변을 듣지 못하면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왔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아서'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들로 머릿속을 채우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약한 그는 많은 부분에서 부당함을 느끼지만 그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은 쓰레기 더미를 걷어 차는 수준이다.
이런 '아서'에게 상담 치료사가 오늘 하루에 대해 묻는다면
아서가
"오늘은 하늘이 너무 맑아 야외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하면서 햇살을 느꼈어요."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남들과 같은 감정과 기분을 요구하면서도 그렇지 못하면 건강하지 못하다고 간주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자신의 아픔을 진심으로 달래줄 수 있는 누군가는 없었기에 아서는 스스로가 보고 싶고 느끼고 싶은 것들을 망상 속에서 찾아 헤맸던 것 같다.
"코미디는 주관적인 것이야.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이 웃기는지 안 웃기는지 결정하지"
아서는 코미디 쇼를 관람하면서 다른 이들이 모두 웃는 상황에서는 한 박자 늦게 억지로 웃어야만 한다. 남들 다 웃을 때 내가 웃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한편 버스에서 갑자기 웃음이 터졌을 때는 아파서 그런 것이라는 쪽지를 건네며 남들을 안심시켜야만 한다.
듣기에 불편할 수도, 위협을 느낄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극 중 주변인들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시선으로만 바라본다. (물론 그 웃음소리가 너무 커 공중도덕과 관련지을 수 있지만 웃음소리가 작았다고 상상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아서의 웃음 조절장애는 획일화되고 규격화시키는 현시대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소재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가끔 보면 정작 나는 절대 웃기지 않은 장면에서 어느 사람은 배꼽을 잡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물론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그 포인트가 다 다를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 중요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웃을 때 웃지 않는 사람을 보며, 개그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둥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둥 이런 평가들이 오가는 순간들이 있다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남들과는 다른 아서에게, 틀린 아서라고만 말하려는 대중에게 아서는 '예의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제는 그동안과는 다른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려한다.
"내 죽음이 내 삶보다 가치 있기를"
분명히 아서는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는데, 왜 스스로가 아닌 머래이에게 방아쇠를 당겼을까?
스스로가 비정상이고 없어져야 할 쓸모없는 존재였다고 생각하며 메모를 하면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아서의 생각이 바뀐 것 같다. 이제는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비정상으로 보이고, 그런 이들을 죽였을 때 광분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스스로가 영웅이 되었다고 느낀 것 같다.
"나로 인한 죽음들이 가치 있기를"
아서가 보기에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들, 무례하고 자신들만 맞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죽음으로 많은 이들이 기뻐하고 열광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는 쿠데타를 일으키는 많은 이들이 자신을 영웅으로 받드는 모습을 보며 아서는 이제 완전한 조커로 살아가기를 마음먹었을 것이다.
결국 조커는 자신의 시선에서 비정상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계속해서 대범한 살인을 저지른다.
당신들이 비정상이라고 보는 나이기에, 당신들이 생각하는 비정상적인 행위로 이 세상을 바로 잡아줄게
어쩌면 조커는 이런 마음으로 앞으로를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이 영화는 주인공 '아서'의 과도한 감정과 그 표출이 반사회적인 모습으로 구현되지만
그만큼 확실히 던지고 싶은 메시지 보인 영화이기도 했다.
우리가 원활한 사회적 자유 안에서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지 못하고 이를 이상하게 받아들인다면, 결국 누가 정하지도 않은 규제 속에서 상대방을 판단하고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경고를 주는 것 같았다.
이 영화는 굉장히 많은 의미가 있는 영화이다.
DC의 히어로물 야심작이기도 하고, 정통 조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아서와 토마스 웨인에 대한 이야기는 속편이 기다려지게 만드는 중요한 소재이지만 이번 이야기에서는 생략하였다. 이 영화로 호아킨 피닉스는 현시대 손꼽히는 명배우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이 영화 이후 DC가 앞으로 더욱 많은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영화들을 만들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컸던 영화이기도 하다.
너무 훌륭했던 만큼 속편이 나오기를 기대하게 되는 영화, 조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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